사창은 삼계면 소재지 마을로 장성읍 서쪽 13KM에 위치하고있다. 장성-함평국도(24번)과 임곡-영광 지방도(816번)가 교차하는곳으로 교통의 요지이다. 팔암산은 사창 북쪽기슭에 형성된 산으로서 서쪽에는 북쪽 내계리에서 내려오는 삼계천이 남쪽으로 흘러 1KM거리의 함동저수지로 빠진다. 이냇은 원래 산밑을 따라 사창초등학교 후문골목과 지서 자리로 흘렀으나 일제 초기에 수로가 변경되고 냇자리에 인가가 들어서 약동말을이 생겨났다.인근지역의 거리는 삼서면 소재지4KM, 영광20KM, 임곡10KM, 함평12KM이다.
숙식 및 주변 정보
팔암산 남단이 호랑이형국으로 사창이 호랑이 머리, 사창 초등학교가 호랑이 앞발, 신억이 호랑이갈비에 해당된다고 한다. 일제때 세운 이기우의 정미소자리가 호랑이의 입에 해당되어 옛날부터 집을 짓지 못했는데 정미소가 들어서서 매일 발동기 소리가 울려 호랑이의 울음소리로 비유되고 또 호랑이는 개고기를 좋아하는데 정미소앞에 개장사가 살아 매일 여러마리의 개를 잡아 풍수설과 맞아 떨어졌다고 한다. 관수정(문화제자료 제 100호):삼계면 내계리 609-1 관수정(觀水亭)이라 함은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뜻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인 골기와의 팔작지붕 건물로 겹처마를 돌렸다. 천방사와 용암천을 낀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다. 지지당(知止堂), 혹 관수정이라는 호를 갖는 송흠이 중종 34년(1539)에 건립한 것이다. 송흠은 세조 5년(1459)에 나서 명종 2년(1547) 89세로 사망하였는데, 연산군때 퇴직하여 후진교육에 전심했고 중종반정후에는 복직하여 내외의 여러 요직을 거쳤다. 특히 담양부사, 전주부사, 광주·나주목사, 전라도관찰사 등 이 지방에서 외직을 맡았는데 이는 101세를 산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서였다. 효행으로 상을 받았고, 중종 33년(1538)에는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했다. 또한 효헌이란 시호를 받았다. 정자의 내부에는 당시대 친우인 홍언필, 전안국, 성세창, 신광헌, 김인후, 임억령 등의 제영(題詠)이 다수 있다. 근래에 새롭게 다듬어 쌓은 두벌대의 돌 기단 위에 복발형(覆鉢形)의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머리에는 경사지게 깍은 보아지를 끼워놓고 주두를 놓은 다음 퇴량을 걸쳐 얹었다. 이 퇴보 위에는 장혀받침 굴도리를 놓아 서까래를 받쳤다. 가구 구조는 1고주 5량가로 양쪽에는 낮은 평주를 세우고 내진의 고주 끝과 대들보 위에 놓은 동자주 위에 종량을 두어 원형판대공으로 종도리를 지붕을 지지하도록 하였다. 오른쪽 2칸은 마루를 깔고 왼쪽 1칸은 방을 두었는데 3면을 4분합 들어 열개문으로하여 개방적인 면이 보인다. 좌우 측면에는 낮은 평난간을 돌리고 배면은 벽으로 처리하였다. 충량과 선자서까래, 기둥 사이의 소로 받침 등에서 가구미가 돗 보인다. 장성 내계리 5층석탑(유형문화제 제 131호):팔암산 서쪽 산자락인 내계리천방마을에 위치하여 구전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방이 천개나되는 천방사가있었던 곳에 위치. 이 탑은 과거 천방사가 있었다고 구전되는 천방마을에 있는 5층석탑으로 (천방사 : 고려시대 사찰의 규모가 커서 방이 천개나 되므로 천방사라 하였고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만을 품은 어느 승려에 의해 모두 소실되었다고 함) 광주 서오층석탑(보물 109호)의 양식과 동일석으로 판명되었으며 기단부가 단층 기단인데 2단 괴임으로 구성한 석재를 3개의 별석으로 하여 3단의 층계를 이룬 형식이 매우 특이한 수법이며 고려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됨. 오랜 세월로 기단부 지대석 일부가 교란되어 붕괴 위험이 있어 '93년 및 2002년 해체 보수 하였고 탑 해체시 발견된 대롱옥, 곡옥, 청동함, 집게, 목걸이용 유리구슬 등 200여점은 국립광주박물관의 임시보관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탑내에 동판으로 된 수리기를 넣어 보관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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