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강변을 따라 적벽산과 이어져 우뚝솟아있는 모양새가 자연산성임을 한눈에 알아보게끔한다. 삼면이 절벽으로 되어있어 낮은산임에도 자연산성으로의 기세가 느껴진다. 월명산,적벽산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낮은 능선이 더욱 산세를 또렷하게 만든다. 정상능선은 평평하며 주변경관은 예부터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 경호강 뒷편으로 숨어있는 산성마을에 다다를때쯤 백마산은 자신의 기세를 풀고 완만한 산세를 허락한다. 백마산 일대의 경치는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적벽 아래 강변 숲 속에는 신안루를 비롯하여 경연, 담분, 유취, 매연, 우화 등 여섯 누각이 있었다고 전한다. 멀리 서울에서 도보로 8백 8십리를 내려온 길손이 이곳을 차마 그저 지날 수가 없어서 수려한 풍광에 젖어 가무와 풍악속에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고 한다. 백마산은 삼면이 절벽으로 둘레가 2,795척이고 동남쪽은 100여 척으로 된 자연산성이다. 정상은 평탄한데 여기에는 못과 창고터가 남아있다. 또한 암반에는 깊이 15cm가량의 군용으로 쓰인 구멍 100여개가 남아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이 성은 자주 이용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진주에서 밀려든 왜적을 막기 위해서 창의병들이 이 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한번은 폭염의 7월인데 왜적이 성을 포위한 채 며칠이고 기다리는 지구전을 펼치는 가운데 성안에는 물이 떨어져서 사람과 말의 기갈이 막심하였다. 이때 한 지혜로운 장수가 말을 바위 끝에 세워두고 쌀을 말 등에 퍼서 던졌더니 산밑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왜병에게는 그것이 마치 성안에 물이 많아서 말을 멱감기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그들은 더오래 포위를 해도 승산이 없을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는데 이때 성안에 있던 병사와 말이 일시에 내달아 강물을 마셨더니 신안강 물이 세 치나 줄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일로 인하여 산이름도 동산성에서 백마산성으로 변하였다. 또한 이곳은 정유재란 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합천 초계의 권율 장군영에서 출발하여 남해의 전세를 살피기 위하여 지나가는 길에 이 산에 올라보고 단성현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행로이기도 하다. 백마산 아래 야산 일대에는 선사시대의 유적 고분군이 있으며 강을 사이로 하여 강루마을 위쪽에는 선사유적이 산재하여 역사자료로 보전하고 있다. 산성마을에는 추강 이창이 강학하던 유연재가 있어 채례를 하고 있으며, 조금 거리를 두고 안곡영당에는 농서군 이장경, 문열공 이조년, 경은 이포, 모은 이인립, 경무공 이제를 배향하였다.
100대 명산 선정 이유
 
추천 코스
 
교통 정보
 
숙식 및 주변 정보
목면시배유지(사적108호), 문익점묘(시도기념물66호), 도천서원 신안사재(시도유형문화재237호) 적벽산 성철대종사생가(겁외사) 목면시배유지 남사고가마을 도천서원 문익점선생묘 백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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